스물세번째 窓
"지혜를 얻는 방법"
KG 가족사에는 특별한 문화가 있습니다. ‘자율진급신청제’라는 것인데요. 진급을 원하는 직원이 직접 신청서를 내고 회사가 그것을 토대로 그 직원을 승진시킬까 말까를 결정하는 제도지요. 지금이야 가족사도 직원 수도 크게 늘어나 각 가족사 대표가 최종 관리자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내가 직접 관여를 했습니다. 진급신청서를 일일이 다 읽고 하나하나 평가를 하기도 했지요. 물론 처음 시행한 제도로 좀 생소하기는 했습니다.
아무튼 그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과장직급의 한 직원이 제출한 진급신청서를 읽고 있는데 참 눈물 빼는 신파조였던 겁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신이 진급을 못하는 걸 늘 걱정하신다는 것, 입사동기들은 죄다 부장을 달았는데 자신은 10년째 과장이란 것, 그 이유는 딱 하나뿐인데 다름 아닌 윗사람에게 찍혔기 때문이란 것, 자신은 일도 잘하고 성과도 잘 냈는데 상사가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 억울할 뿐이란 것 등등.
그래서 난 즉각 ‘팩트체크’에 들어갔습니다. 은밀히 사실관계를 조사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결과가 영 의외였습니다. 이 직원이 그 ‘고문관’이란 겁니다. 군대에서 많이 쓰는 말인 고문관은 한마디로 ‘손이 많이 가는 친구’를 말하지요. 말귀 못 알아듣고, ‘빠릿빠릿’은 다 내다버렸고, ‘맡은 일=사고치는 일’이고, 선임이나 상급자에게 반항하는 일을 나라사랑이라고 믿는. 물론 그 친구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만,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어내는 ‘골칫덩이’였던 건 맞는 듯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남들은 다 아는 ‘무능력’을 자신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데요. 되레 그것이 억울하다고 호소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어쨌든 사정을 알고 난 뒤 나는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면담을 했지요. 동료와 상사의 의견을 전하고, 내 생각도 말하고. 그런데 별로 인정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론을 냈습니다. “10년 과장은 너무 잔인하고, 나이 드신 어머니도 생각해야 하니 일단 진급은 시켜주마. 그러니 일하는 방식을 한 번 바꿔 잘 해보자.”
자,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 직원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급 이후 더 세진 업무강도로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결국 못 견디고 스스로 사직하고 말았습니다.
좀 장황해졌습니다만 옛이야기를 길게 꺼내 놓은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때 내 판단의 실수를 다잡기 위해섭니다. 만약 그 직원을 과장으로 그냥 뒀다면 진급은 못해도 직장생활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진보할 수 없다는 참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싶어섭니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의 근원은 ‘자신을 아는 일’부터란 겁니다.
이 분야에 관한 한 독보적인 대선배가 있지요. 철학자 소크라테스 말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란 독한 소리를 여기저기에 하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2000년이 넘도록 인구에 회자되는 이 불후의 명언이 나온 배경이 무엇일까요.
어디선가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을 찾아다녔답니다. 그런데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다들 한목소리로 외쳤다는 거 아닙니까. “소크라테스요!” 그래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몰려갔다지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데 비결이 뭡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장 똑똑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 델포이신전에 씌어 있던 말이랍니다. 소크라테스가 좌우명 삼아 자주 사용했다고 하고요. 결국 소크라테스는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똑똑하다’는 걸 알고 실천한 사람이었다는 거지요.
누구나 자신을 잘 알 수 있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실수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을 잘 안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지혜가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능력이 없으면 없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야 빠지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으니까요.
부족한 것을 알아야 남의 것을 채울 수도 있을 거고요. 게다가 인생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법입니다.
진급신청을 했던 그 직원과 소크라테스의 차이는 사실 한 끗이었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는 그것 말이지요. 바로 세상사는 지혜를 얻는 방법의 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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