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窓
"당신의 나이는 몇 살 입니까?"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한 여성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 이야기 중 재미있는 게 한 가지 있었는데요. ‘내가 진짜 한국에 와 있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 때가 있답니다. 주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라고 하네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라거나 “어째, 결혼은 하셨나?” 같은. 어쩌다가 한두 번 마주친 것이 전부인 상대가 덥석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지요.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외국에서는 잘 모르는 상대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결혼은 했느냐?’라고 묻는 일은 ‘대형사건’이랍니다. 굉장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또 엄청난 실례를 범할 각오가 아니라면 작정하고 캐내야 하는 ‘개인기밀’이니까요.
어쨌든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 덕분에 모처럼 ‘나이’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도대체 나이가 뭐길래 함부로 묻고 답하기 곤란한 ‘천기누설’이 돼버린 건가. 그냥 ‘이름이 뭡니까’처럼 편하게 묻고 답하면 안 되는 건가.
흔히 ‘나이’하면 세상은 오로지 한 가지 잣대만 들이댑니다. 지금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계산법. 사실 나는 양머리 세듯 햇수로만 나이를 세는 이런 방식에는 좀 비딱한 편입니다. 나름 계산하기 편리할지는 몰라도 별로 공평한 것은 아니니까요. ‘나이’ 혹은 ‘나이 먹는 일’이란 게 누구에게나 똑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나이’에는 세 가지가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행정적 나이’와 ‘육체적 나이’ 또 ‘정신적 나이’.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나이가 바로 ‘행정적 나이’입니다.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 낙인처럼 ‘등록’돼 평생 따라다니는 그거지요. 그런데 이 ‘행정적 나이’라는 건 사람을 배려했다기보다 서류를 배려한 것입니다. 순전히 행정적인 편의에 의해 만들어졌으니까요.
알다시피 신체적 기준으로 볼 때 개개인의 노쇠함은 이런 ‘행정적 나이’와는 많이 다릅니다. 예순 살이 돼도 40대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요, 반대로 마흔 살에도 60∼70대의 골골체력인 사람이 적지 않지요. 실제로 세상과 하직하는 날을 가장 정밀하게 알려주는 건 ‘행정적 나이’가 아닙니다. 우리 몸이 얼마나 건강한가를 알려주는 ‘육체적 나이’지요.
그렇다면 ‘정신적 나이’는 어떻습니까. 앞의 두 가지와는 또 다릅니다. 호기심·열정·도전 같은 ‘젊은 키워드’가 많고 적음에 따라 달라지는 나이니까요. 젊은이는 새로운 것에 아주 관심이 많지요. 뭐든 정열적으로 덤벼들고 또 과감하게 저지릅니다. 반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것에는 시큰둥합니다. 두려워하게 되고요. 만사가 다 귀찮다고도 하지요.
자, 어떤가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 없는 나이가 ‘행정적 나이’인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 어설픈 나이에 갇혀 스스로 주눅 들고 도전을 안 하고 생각을 멈추고 있습니다.
‘행정적 나이’의 많고 적음은 절대로 우릴 지배할 수 없습니다. 고작 서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그까짓 숫자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요.
젊어지고 싶습니까. 운동하고 도전해보십시오. 열정을 갖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껴 보세요. 진짜 평생을 젊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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