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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번째 窓

 

''팩트와 맥락"

 

 “지난 금요일 서울 모 호텔에서 A기업 임원 김씨가 경쟁업체인 C기업의 임원 이씨와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눴다.” 살다보면사람 잡는 오해라는 걸 가끔 겪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경우가 해당될 겁니다. 만약 앞의 광경을 A기업이나 C기업의 직원들, 아니면 이들을 아는 언론사 기자라도 우연히 목격했다면 아주 난처한 처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정보유출을 하나? 스카우트 제의인가? 아니면 가격 담합?” 그럼에도 이 문장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기선 그냥 김씨와 이씨가 무조건나쁜 놈!”이면 됩니다. ‘팩트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날 만난 김씨와 이씨가 어릴 적 친구사이였고 여러 가지 이유로 연락이 끊겼다가 실로 오랜만에 우연찮게 만나 밥 한 끼 먹게 된 거라면 어떻습니까. 그 식사장면이 문제될 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이렇듯 우리 삶에서 팩트와 맥락은 무척 중요합니다. 각각도 중요하긴 하지만 둘이 딱 붙어 떨어질 수 없는 밀착관계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케미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맥락은 제쳐두고 팩트로만 세상일을 판단하는 잘못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비단호텔의 그들처럼 개인적인 비즈니스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정치든 경제든 근거가 애매한 이슈가 툭 불거지기도 하는데요. 간혹 언론이 하는 실수가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나는 던져놓을 테니 판단은 그대들이 알아서 하시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슈 한 줄만 봐선 어떤 배경에서 그런 내용이 나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러니 그 팩트를 두고 온갖 추측에,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할 수밖에요. 그래서 최근 언론에서 히트상품이 된 ‘팩트체크’란 코너가 관심을 끄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참 씁쓸할 일이 아닙니까. 팩트에 달린 맥락을 풀어주는 건 당연히 일인데 이것이 마치 심층취재처럼 떠오르고 있으니까요.

 

맥락이 없는 팩트는 없는 법입니다. 팩트만 보고 판단해버리면 아주 곤욕스러운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데요.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둔갑시킬 수도 있고요, 파렴치한으로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본김씨와 이씨의 경우처럼요. 게다가 말이지요. 만약 김씨와 이씨가 남녀 사이였다면 어땠을까요. ‘나쁜 놈정도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아마 소설책 한 권은 나오지 않았을까요. 물론 팩트만 보고 내린 판단이진짜 사실일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주사위를 던져 항상 1번만 나오길 바라는헛된 꿈인 거지요.

 

그러니 팩트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아예 판단을 하지 말자는 게 내 의견입니다. 어설픈 판단은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요. 판단을 못하는 상태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각자의취향에 맞춘 해석밖에 안 되는 겁니다. 또 어설픈 판단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고요.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터지고, 서로 못 미더워 하다가 모두를 지치고 힘들게 할 겁니다.

 

맥락이 별것인가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팩트의 전후 사정이 맥락입니다. 그러니 그 전후 사정 한번 알아보자는 겁니다. 앞에는 어떤 원인이 있었고, 뒤에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됐는지를 살펴보자는 겁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말이지요. 적어도 팩트에 눈이 멀어 상황을 잘못 받아들이거나 엉뚱한 싸움거리를 만드는 일은 많이 사라질 겁니다.

 

, 이젠 달랑 팩트 하나로 일의 전부를 판단하는 실수가 좀 줄어들까요. 결국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아는 척 해 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이기도 한데요. 좀더 친절하게 풀어주면 이런 뜻입니다.

 

팩트로 멀쩡한 사람 잡지 말고, 맥락을 보고 판단하세요. 모르면 차라리판단정지!’가 낫습니다. 그 편이 우리 인생이나 사회에 훨씬 도움이 될 거고요.”

 

어떻습니까. 주위에 이런 충고 한 번씩 날려주고 싶은 사람이 한둘은 꼭 있지 않습니까. 물론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겠지요. 정말 나는 맥락을 잘 살피고 있는지, ‘팩트체크부터 하는 게 순서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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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20 13:44

서른번째 窓

 

"훈계와 징계의 선택"

 

 우리집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같이 삽니다. 한 마리는 열세 살짜리 암컷이고요, 다른 한 마리는 수컷인데 갓 6개월 된, 진짜하룻강아지입니다. 함께 산 지 꽤 되다보니 열세 살 된 암컷은풍월을 읊는 서당개근처까지 다가갔습니다. ‘훈계를 제법 알아듣는다는 뜻입니다. ‘해라고 하면 발딱 일어서고, ‘하지 마라고 하면 순간 얼음이 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6개월짜리 하룻강아지입니다. 범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니까요. 천방지축 덤벼들고, 이리저리 물고 뜯고,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닙니다. ‘해라, 마라의 훈계가 도대체 먹히질 않는 거지요. 결국 매를 법니다. 신문지를 돌돌 말아 만든 몽둥이에 콧잔등이 협박당하는 징계를 받는 겁니다. 요즘은 신문지만 말아도 살짝 움찔하는데요. 아마도훈계 끝에 징계가 온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일 겁니다.

 

, 이제 사람 얘기를 해볼까요. 최근에 들었던 목사님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질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 그러니 끊임없이 객관적 기준을 들이대는훈계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사람은 누구나내 멋대로나갈 여지가 있으니, 끊임없이그가 처한 처지를 일러줘야한다는 얘깁니다. 목사님의 신분과 역할을 십분 고려해보면 아마 그 배경에는 신앙생활에 대한 독려가 최우선으로 올라가 있을 듯합니다. ‘성경에 나온 가르침을 잘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는 징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처럼 말이지요.

 

그렇다고 종교적인 설득만도 아닙니다. 훈계니 징계니 하는 건 우리의 일상이고 우리 삶의 진정성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학창시절에 특히 그랬지요. ‘지각하지 마라’ ‘공부 열심히 해라’ ‘싸우지 마라등등의 훈계가 학교생활에서 들은 얘기 중 절반은 넘지 않았을까요.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청소니 체벌이니 하는 징계가 날아왔고요.

 

성인이 되어서도 그다지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여전히지각하지 마라’ ‘일 열심히 해라가 포함될 거고요. ‘싸우지 마라를 대신해선 좀 고차원적인효율·합리·혁신등등이 나타났을 겁니다. 징계요? 물론 학창시절보다 더 극적입니다. 심하면 밥벌이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훈계란 게 뭘까요. 사전에선타일러서 잘못이 없도록 주의를 주는 일로 정의한다는데, 그 일이해라, 마라뿐일까요.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훈계는 지난 삶에서 나오는모든가르침입니다. 예컨대 사람은 물론이고 책이든 영화든, 또 과거의 역사든 어떤 것이라도, 우리 삶에 맞지 않는 것을 일러주고 가르쳐줄 때 나는 그것이 훈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훈계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겁니다. 친구와 동료 간에, 선후배 사이에도 할 수 있고요 자식이 부모에게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징계가 굳이 체벌만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간혹 주위에 누구나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말을 거칠게 한다든가 장난이 심하다든가 주사가 있다든가 하는. 그의 친구가 작정을 하고 그불편함을 충고했다고 합시다. 훈계인 거지요. 그럼에도 그 사람이 친구의 말조차 듣지 않았다면? 아마 둘의 관계가 끊어지고 말 겁니다. 그 사람은 친구를 잃는 징계를 받은 겁니다.

 

그렇다면 말이지요. 사람들은 왜 훈계에서 멈추지 않고 징계가 올 때가지 기다리는 걸까요.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본능을 추구하는 일에 너무 빠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라면 게으르고 나태해서고요. “당신의 폐가 안 좋으니 담배를 끊으세요라는 의사선생님의 훈계를 안 들으면 폐암이란 징계를 받지 않겠습니까. 자기중심적인 판단도 훈계를 방해하는 듯합니다. 상황을 자신이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 해석은 공정한 것이라기보다 스스로의 본능에 굴복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앞서 말한 목사님의자기중심적인 본능이란 지적이 바로 그것이겠지요.

 

훈계의 핵심은 징계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징계는 곧아웃이니까요. 이런 일에 반드시 윗사람만 나서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똑 부러지게 뭘 가르치는 거나 질책하는 일만도 아닙니다. 가족이나 동료가 조근 조근 일러주는 생활의 지혜, 걱정하는 말도 훈계일 수 있는 거니까요. 또 한편으로 보면 아예 지키라고 우리가 만들어둔 법과 제도도 훈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른바사회적 훈계입니다. 역시 듣지 않을 땐 징계가 따릅니다. 감옥에 갇히는 신체적 징계, 벌금을 내는 물질적 징계 등등.

 

좋은 말로 할 때 듣는 것이 좋습니다. 징계가 오면때는 늦으리라가 됩니다.

 

처음엔 콧잔등을 좀 맞아야 하긴 하지만 한낱 강아지도 훈계를 알아듣습니다. 아내의 충고를 매번 잔소리라고 무시하다가 기어이이혼청구서를 받아들고 정신을 차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 이쯤 되면 우리가 훈계를 선택해야 할지 징계를 선택해야 할지, 답은 나온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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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28

스물아홉번째 窓

 

"보고하지말고 공유합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지만 할 때마다 하기 싫은 일이 아마보고일 겁니다. 사실보고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해야 하는의무방어전같은 것이지요. ‘가장 윗자리에 있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보통 회사조직을 피라미드형이라고 할 때 그 내부는보고란 그물로 촘촘히 엮여 있습니다. 어디 하나가 구멍이 나면 당장 업무진행에 차질이 생깁니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수도 있고요, 위쪽으로 타고 올라가는 채널이 끊길 수도 있습니다.

 

그림으로만 딱 봐도보고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보고는 왜 그렇게 하기가 싫은 건가. 내가 한 일에 대한 결과를 상대에게 알리는 일이라면 신날만도 한데.

 

‘가장 윗자리에 있는 단 한 사람의 자격으로 한번 관찰해 봤습니다. 왜들 보고라면 슬금슬금 피해 다니는지 말이지요. 보고서를 쓰는 일 자체가 싫은 건 아닌 듯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 나서서쓰고 올리는일을 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페이스북, 유트브, 인스타그램 등 SNS 활동이 그중 하나겠지요. 쓰고 나면 그만인가요? 아닙니다. 반응도 신중하게 기다립니다. ‘좋아요가 얼마나 되는지, 댓글은 어떻게 달렸는지, 누가 특히 관심을 갖는지. 혹시 결과가 영 신통치 않다면 문제가 뭐였는지 정밀한 분석까지 내놓습니다.

 

보고서를 쓰는 일은 끔찍이 싫은데 SNS에 쓰는 일은 즐겁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두 가지의 소통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요. 하나는보고라는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공유라는 형식인데, 이 둘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겁니다. 똑같이 내가 한 행위나 일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은 건데, 어떤 것은 죽자고 하기 싫은 회사일이 되고 어떤 것은 재미있는 놀이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과연 해결책이 있을까요. 의외로 쉬운 데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좀 덜 힘들여 하는 그 방법. 회사일을 놀이처럼 하면 어떨까 하는 거지요. 바로보고하지 말고 공유하라는 것입니다.

 

한번 곰곰이 따져봅시다. 회사에서 이뤄지는보고라는 행위는 말이 보고지 통보나 다름이 없습니다. ‘보고라 쓰고 통보라 읽는거지요. 누군가가 어떤 일에 대해 행동하거나 결정한 일의 결과를 상사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거니까요. “이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결과가 나왔습니다등등, 대부분의 보고는 이미 다 끝난 사안을 통보하고 통보받는 겁니다. 사실 이런 과정은 보고하는 사람만큼이나 보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에 반해서 공유는 어떻습니까. 어떤 일의 시작, 진행, 결과는 물론이고 좋았던 일, 나빴던 일까지 시시콜콜하게 서로 나누는 과정이 아닙니까.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좋을까요, 저것이 좋을까요” “당신이라면 어찌 하겠습니까등등, 상대의 생각을 묻고 상대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의견을 나누자고, 또 같이 하자고 제안해주니 언짢은 일이 생길 수가 없는 겁니다.

 

흔히 우리가 하는 수많은 회사일 가운데문제가 생기는 건 중간과정에 대한 소통이 누락돼 있을 때입니다. ‘담당자란 사람이 판단착오를 일으킨 것을 그대로 추진하거나, 전달하고 의논해야 하는 과정을 생략했을 때 생깁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입니다.

 

이쯤 되면 서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회사’(會社)란 게 뭡니까.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이루고자 하는 뜻을 함께 이뤄내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생각한 대로 일하고, 각자 알아서 결과를 만들고, 각자 알아서 통보를 한다? 내가 판단할 때 이것은 이미 회사가 아닙니다. 본질은 실종되고 장점도 사라져 버린, 그냥 이상한 개인사업자들의 모임이 돼버리는 거지요.

 

회사에서나의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일입니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모두의 것으로 같이 나누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경영이란 건 맞고 틀림을 찾는 게 아니니까요. 좋은 것을 더 좋게, 나쁜 것은 덜 나쁘게 만들어가는 조율이니까요. 그러니 이제부턴 보고하지 말고 공유합시다! 결말을 열어 두고 상대의 의견을 물어주면 없던 배려도 생기는 법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사보다는페친이 훨씬 더 편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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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26

스물여덟번째 窓

 

"평형수"

 

 어느 배에든평형수라는 걸 채웁니다. 평형수는 운항 중에 배의 무게중심을 잡으려 저장하는 바닷물을 말하지요. 배의 아랫부분에 넣기도 하고 좌우에 설치한 탱크에 채우기도 한답니다. 물에 동동 뜨는 작은 고기잡이배는 예외로 하고요. 사람도 태우고 짐도 싣고 차도 태우는, 규모가 좀 되는 선박에만 해당됩니다. 그래서 평형수를선박평형수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

 

배에 평형수가 필요한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안정성을 높이려는 거지요. 파도에 휩쓸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던 배를 중심잡게 해주는 역할이니까요. 수평을 맞추려면 배 안에는 반드시 평형수가 있어야 합니다. 오뚝이의 원리라고 할까요. 사실경제성과는 상반된 장치입니다. ‘돈이 되는 공간은 아니란 뜻입니다. 화물을 실어도 모자랄 한정된 공간을 떡하니 바닷물이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정성은 나 몰라라 하고 경제성만 챙기다간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요. 세월호가 전복된 결정적 이유가 화물을 더 실으려고 평형수를 덜 넣은 것, 그래서 배의 복원능력이 사라진 탓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평형수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과연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 물 위에 뜨는 배뿐인가. 중심을 잡는 일은 사람이나 기업에서도 대단히 중요한데.

 

맞습니다. 사람에게도 기업에도 평형수라는 게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뜻하지 않은 위기와 시련을 맞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마다 넘어가거나 뒤집히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물이꼭 필요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사람과 기업은 평형수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사람의 배에, 기업의 건물에 물을 잔뜩 넣어둘 순 없는 노릇이고요. 아마도 평형수를 대체할 만한 게 필요할 겁니다. 내가 생각할 땐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품격이나 가치관, 기업의 사명이나 미래비전 말입니다.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우직한 기본기, 단단한 철학이란 겁니다. 바로평형심인 것이지요.

 

그런데 평형심이 그냥 생길 리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든 기업이든 흔들리는 상황에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감정이 널뛰기를 하면 실행력이 가벼워지고 가벼운 실행력으로는 복잡한 형편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조그만 변화에도 이리저리 좌우로 왔다하는부화뇌동은 결국 일을 그르칩니다. 때론 아니 자주, 진득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고지식함이 긴요하다는 소리입니다.

 

사는 일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그러니 인생을 잘사는 방법은 난관에 빠지지 않으려고 용쓰는 게 아니라 난관에서 잘 빠져나오는 걸 겁니다. 기업이라고 다르겠습니까. 크고 작은 위기와 사건·사고가줄줄이인데,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건 한계가 있겠지요. 차라리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편이 현명한 처신일 겁니다.

 

우리 가족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몇 해 전 이데일리는 판교에서 큰 사고를 겪었습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작은 공연에서 생긴 사고가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겁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기업경영을 시작한 이래 일생일대의 충격을 겪었고, 이데일리 역시 창사 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결국 잘 이겨냈다고 생각합니다. 휘청거리고 기우뚱했으나 이내 중심을 잡아냈습니다. 평형수 아니 평형심이 작동한 것이지요.

 

어떤 일에서든 원칙을 지키는 겁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대의를 생각하는 것이고요. 어떤 유혹이 속삭여도 올바른 방향을 향한 키를 붙잡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만 해낸다면 설사 거센 풍랑에 한쪽으로 쏠린다 해도 즉각 원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썼다는중용에서 말하는평정심이 결국 이런 게 아닐까요.

 

난리법석 떨지 말고 세상을 좀 진중하게 봐라. 촐싹대며 왔다갔다도 하지 말고. 제발 좀!”

 

우리라는 배에는 매일 파도가 칩니다. 이리저리 기울게 돼 있습니다. 맞서 싸운다고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버텨낼 뿐이지요. 그러니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거망동하다간 거센 물결에 휩쓸리기 십상입니다. 차라리 이 파도가 무슨 의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편이 낫습니다. 평형수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벌어진 일의 본질을 되새기며 애써 돌아가게 하는 평정심.

 

평형수의 진짜 가치는 위기상황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위기를 맞으면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숨겨놨던 바닥을 뒤집어보이는 것도 일이 터졌을 때입니다. 방법이요? 평형수를 채워두는 겁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손해를 보는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아예 틀어막는 겁니다. 정말 어이없이 우리의 배가 덜컥 침몰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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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23

스물일곱번째 窓

 

"내편이 아닌일을 대하는법"

 

 퀴즈 하나 풀고 시작할까요. 골프채에는못난이 삼총사처럼 늘 붙어다니는 ‘3종세트가 있습니다. 그걸 묻는 문제냐고요? 그럴 리가요. 3종세트가드라이버와 아이언, 퍼터인 건 다들 아실 테고요. 퀴즈는 이겁니다. 그렇다면 이들 각각의 한글이름은 뭘까요? 골프실력이 신의 경지가 아니라면 오히려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 드라이버의 한글이름은이상하네입니다. 아이언은왜이러지고요, 퍼터는미치겠네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참 마음 같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스트레스를 풀면서 운동이라도 하자고 나선 필드에서조차 이 모양이니까요. ‘매번가끔의 차이일 뿐 프로골프선수라고 열외인 것도 아닌 듯합니다. 3가지 골프채를 쓰면서 3번의 한글이름을 외치는 것, 그게 골프니까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건 또 있습니다. 우리가 직업으로 삼은이란 겁니다. 골프공이 제멋대로 튀어다니듯은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질 않습니다. 뜻대로 안 되는 것뿐이겠습니까. 재미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말이지요. 삼복더위에 땀 뻘뻘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축구는 좋아라들 합니다.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 앉아 컴퓨터와 하는 일은 돌아버릴 지경이라면서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일은 결국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사는 동안 내내 해야 하는 건데요. 게다가 야속하게도 말입니다. 일은 우리에게 맞춰주는 법이 없습니다. 스트레스로 폭발해 머리에 연기가 피어올라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이렇습니다. “일은 원래 그런 거라고 해두는 겁니다. 원체 재미없고 힘들다는 걸 쿨하게 인정하는 거지요. “재미있다, 재미있다최면을 걸지 말고 아예 생각 자체를 바꾸는 겁니다. 그런 뒤에덜 재미없고’ ‘덜 힘들게일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 그게 훨씬 낫다는 얘기입니다.

 

그중 하나가 상대에게 나를 맞추는 겁니다. 내 기준만 우기지 말고요. 어렵게 말하면상황에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뜻이지만, 쉽게 말하면제발 답답하게 굴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느 누구를 특별히 배려하지 않습니다. 살아남기로 했으면 내가 맞춰야 합니다. 사막에 가면 사막의 여건을 따르고, 정글에 가면 정글의 법칙에 따라야 살 수 있습니다. 사막이나 정글까지 가서도나는 특별하다고 버둥대봤자 힘들어지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스코어 말고 성취감으로과정을 즐기라는 겁니다. 보통 일에 대한 평가라 할 땐 잣대가 이중적이기 일쑤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것과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게 다르다는 건데요. 예컨대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그렇지 않습니까. 상사는 결과를 따져야 하는 자리에 있고, 부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싶은 자리에 있다는 거지요. 어차피 서로 닿으려야 닿을 수 없는 관계인 겁니다.

 

이럴 때 뭐가  최선이겠습니까. 누가 뭐라 하든 내가 행복할 수 있는성취감을 만드는 겁니다. 가령 오늘 100점이란 타깃을 정했는데 90점까지밖에 못 갔다고 칩시다. 설령 그 10점 때문에 막대한 손해가 나더라도 90점에까지 가는 동안 즐거웠으면 그걸로한 건한 겁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3가지 직업에 관해서인데요. ‘선거 안 하는 국회의원’ ‘강의 안 하는 교수’ ‘기사 안 쓰는 기자랍니다. 어떻습니까. 한번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왠지 좀 씁쓸하지 않나요. 국회의원과 교수와 기자의 일이란 게 각각 선거이고 강의이고 기사인데, 그 일을 안 한다? 안 하는 거야 그들 마음이지만 결국 자신들의 존재이유까지 없애는 거겠지요.

 

, 그러니 재미없고 힘들기만 한도 순순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성질 부려봤자 자신만 손해인 거고요, 화 낼 필요도 없고 서운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짜 현실의 국회의원은 매번 선거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답니다. 교수도 학기마다 돌아오는 평가가 괴롭다고 하고요, 매일 마감시간 좇겨 따박따박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도 죽을 맛이라네요. 그 누구도 일에서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행복하고 우리가 즐거울 수 있는 길 찾기가 험난해서라고 해두지요.

 

그러니이상하네 왜이러지 미치겠네를 연발해놓고도 또 ‘3종세트를 메고 골프장으로 향하는 거 아닙니까. 행복을 찾으러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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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21

스물여섯번째 窓

 

"현명과 미련"

 

 가족사 한 직원이 외부업체의 대표를 만났답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회사얘기가 오고 간 모양입니다. 대화 중에 대표는 그 직원에게 일을 잘한다고 슬쩍 칭찬을 했나 보지요. 그런데 그 직원, 한사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답니다. 회사가 든든한 바탕이 돼주니 그만큼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자신은 그저 얹혀간 것뿐이라고. 이 얘기는 우연찮은 기회에 내가 직접 그 대표에게서 들었습니다 

 

보통 회사의 직원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회사를 높이는 직원자신을 높이는 직원’. ‘회사를 높이는 직원은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나는 잘하는 게 별로 없는데 회사 덕을 많이 본다로 시작해서앞으로 더 잘해보고 싶다로 끝냅니다. 반면자신을 높이는 직원은 스스로를 앞으로 드러내고 싶어 안달입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회사가 엉망이라 빛이 나질 않는다로 시작해사실 내가 이 회사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로 끝내지요.

 

, 만약 우리가 양쪽의 얘기를 들어준 사람이라면 어느 직원에게 호감을 갖겠습니까. 굳이 대답을 안 들어도 알 겁니다. 결국 상대에게서 관심을 받고 칭찬을 이끌어내는 쪽은회사를 높이는 직원입니다. 나는 이들을 간단히 이렇게 구분하고 싶습니다. ‘현명한 사람미련한 사람’.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현명하다미련하다가 있습니다. 너무 편하게 말하다 보니 그만큼 함정도 있습니다. 정확한 의미 없이 그냥 그런 뜻이려니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기회에 한번 잡고 갈까요. 내가 구분하는현명미련은 이렇습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파악하고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을현명이라고, 자신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도대체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미련이라고요. ‘현명한 사람미련한 사람에 대한 분석도 바로 나옵니다. 지금 처한 현실과 상황을 잘 판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대처하는 이를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하지요. 그렇다면미련한 사람? 현실감도 없고 상황도 모르고 거기다가 대처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고 칩시다. 참고 넘길 것인가 참지 말 것인가를 잠시 생각한 뒤, ‘들이받자고 결정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괜찮은판단입니다. 그 다음의대처가 중요한데요. 들이받을 친구가 키 190cm에 체중은 100kg이 넘는 거구랍니다. 과연 분노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에게 응징하겠다고 덤벼든다면 현명한 대처를 했다고 하겠습니까.

 

흔히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무엇인가 상대에게 계속 불만스러워 하는 연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사람이 변했다고 따지고 든다면, 혹여 서로의 감정을 식게 한 원인은 찾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관철하려 든다면 활화산에 기름을 들이붓는 미련한 짓이 되겠지요.

 

‘현명’과미련이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명한 기업과 미련한 기업도 있고요, 현명한 국가와 미련한 국가도 있습니다. 기업과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명과 미련의 차이는 흔히 협상테이블에서 잘 드러납니다. 기업 간 M&A나 국가 간 FTA 같은 중차대한 결정 말입니다. 현명한 기업과 국가는 협상에서 중요한 게밀당이란 걸 압니다. 양보할 건 하고 받을 건 받고, 밀고 당기는 기술이 협상력을 높인다는 걸 간파하고 있지요. 그런데 무조건 받아내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막무가내로 고집만 부린다면? 이는 아예 협상을 깨자고 덤비는 것 같은 대단히미련한 짓인 겁니다. 이렇듯현명미련은 개인의 삶을, 기업의 진퇴를, 국가의 운명을 가름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미련을 벗겨내고현명에 다가설 수 있을까요. 당장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요. “많이 배우고 공부해야 현명해질 수 있는 겁니까?”

 

내가 생각할 때현명미련은 지식이 얼마나 풍부한가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옛 어르신을 회상하며현명한 분이라 할 때는 그 분이 얼마나 배웠는가를 재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리판단이 지혜롭고 처신이 슬기로웠을 때에야현명이란 수식을 붙이지요. 교육받을 여건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진 요즘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고 학벌의 엘리트코스 출신이라고 해도 항상현명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니더란 거지요.

 

결국 관건은나 자신을 어디에 두느냐 일 듯 합니다. 모든 판단과 대처에서 나를 배제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에 따라현명미련이 갈린다는 뜻입니다.

 

상사에게 욕 한 번 먹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 직원이 있다고 칩시다. 꽤 근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집니다. 우린 그 직원을 결코 현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억울한 심정을 일단 내려놓고 자신을 욕먹게 한 원인을 찾아 상사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훨씬 현명한 처신일 겁니다. 상황은 이내반전드라마가 될 테니까요. 미련하게 보였으나 현명하게 길을 찾아가는 사람, 인생에서진짜 주인공은 바로 그이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뜻이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제발 미련 좀 떨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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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18

스물다섯번째 窓

 

"로열티가 필요한 이유"

 

 사람은사회적 동물입니다. ‘소속을 가졌다는 뜻이지요. 개인이어도 개인만이 아닌, 타인과의 끊임없는 관계아래 존재한다는 의미고요. 작게는 가족부터 학교나 회사가 있고 크게는 국가, 더 크게는 세계와 우주에까지 이를 테지요.

그런데 이 사회적 동물은 크게 두 종류로 갈리는 것 같습니다. ‘로열티가 있는동물과로열티가 없는동물. 로열티라는 말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우리말로 옮기면충성에 가장 가까울 테니까요. ‘로열티가 있다고 말할 땐 자신이 몸담은 소속에충성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가족, 학교, 회사, 국가, 세계, 우주, 그 어디가 됐든 말이지요.

사실 나이가 좀 든 세대라면 충성이란 단어에 거부감이 없지 않습니다. 예전 반민주시대를 살던 때 유독 국가가 강요했던 충성에 대한 트라우마 탓일 텐데요. 젊은 세대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아부, 아첨, 굴복, 종속 따위와 충성을 동격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로열티와 충성 사이의 묘한 어감 차이로 자신의 행동을 구분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결국 같은 말인데, 충성은 고리타분한 구시대유산으로 로열티는 세련미 물씬 풍기는 현대신문물로 받아들이는 거지요.

예컨대 누가 이렇게 말했다고 칩시다. “너 회사에 엄청 충성하더라.” 아마 치고 박고 싸움나기 십상일 겁니다. 대신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대단한데라고 했다면? 아마 술 한 잔도 얻어 마실 수 있을 겁니다. 시쳇말로웃프다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이 칼럼에선 술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로열티로 밀고 나갈까 합니다.

그렇다면 로열티는 왜 필요한 걸까요. 그냥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을 텐데요. 내 대답은행복해지려고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조직의 일원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흔히 주위에서 자주 듣는 푸념이 있습니다. “우리 집은 왜 이 모양이야” “우리 회사는 정말 이거밖에 안되나” “마음에 맞는 동료가 하나라도 있어야지 원등등. 결론적으로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주 못마땅하다는 건데요. 과연 이런 여건에서 행복한 삶이 가능하겠느냐는 거지요. 로열티가 없는 조직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불행한 일이고요, 또 조직은 조직대로 구성원의 로열티조차 받지 못하면서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일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자신도 손해, 조직도 엉망. 둘 다 망가지는 겁니다.

물론 이런 의심을 할 수 있겠지요. 로열티도 감정의 문제인데 마음만 다부지게 먹는다고 없는 로열티가 생기겠느냐고요.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없던 로열티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근거는 이렇습니다.

첫째, 로열티는 수용하는 자세에서 생깁니다.

그러니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우리 가족의 아들딸이며 지금 다니는 회사의 일원이란 것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하루종일 크고 작은 조직과 부대끼면서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고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르다는 식으로 거리를 두는 건 참 어리석은 짓이라는 거지요.

수용하는 자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순종과 복종. 별 다를 게 없는 듯하지만 사실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동의를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 가령사장님이 나에게 일을 시켰다, 나는 그 일을 하기가 싫다, 그런데도 사장님이 시킨 일이니까 해야 한다. 그래서 했다.” 이건 복종입니다. 반면사장님이 나에게 일을 시켰다, 아 그 일을 했어야 하는구나, 그래서 했다.” 이건 순종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알아챘을 겁니다. 로열티에 필요한 건순종하는 수용성입니다. 그런데 순종이 잘 안 되는 건 왜 그럴까요. 충성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겁니다. “너 회사에 엄청 충성하더라란 말끝에 투닥투닥 싸움박질을 벌이는 경우가 그것이겠지요. 정말 충성이란 게 그토록 지탄받을 만큼 나쁜 거던가요. 불행의 시작은 되레 이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생기는데.

둘째, 로열티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싹틉니다.

사람이 사는 일인데 밉고 섭섭한 게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결국은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상사와 부하 혹은 동료끼리 고마워하는 마음을 품고 가야 합니다. 참 별 거 아닌 그 고마움이 가족을, 회사를 단단하게 행복하게 하니까요. 감사할 거리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은 아니어도 나를 이만큼 성장시켰으니 감사하고’ ‘연봉은 좀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 회사가 나를 이만큼 생활하게 해줬으니 감사하다처럼요.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덕분에 이제 로열티가 생길 거란 지레짐작에 방심하는윗분들은 없겠지요. 로열티라는 게 아래에서 위로만 향한다고 믿는 건 착각이란 얘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놓고웬수같은 놈이 어째 내 속에서 나왔나라며 한탄만 하고 있다면, 사장이 직원을 뽑아놓고내 옆에는 어째 이리 멍청한 놈들뿐이냐고 탄식만 하고 있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로열티 없는 세상의 불행이 이미 시작된 겁니다. 결론은 쌍방향입니다. 그렇게 양쪽을 향하다보면 어느 순간 누구를 위한 로열티보다 나 자신을 위한 로열티가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강해질 겁니다.

끝으로 하나만 덧붙일까요. 우리말 발음으로는 거의 구분이 안 되지만 이제껏 내가 말한 로열티는 알파벳 L로 시작하는 로열티(loyalty)였지요. 사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로열티는 알파벳 R로 시작하는 로열티(royalty)지요. 남의 상표권이나 소유권·저작권을 사용하고 지불하는 사용료란 뜻의 단어 말입니다.

 

우리 가족사 임직원들에게 로열티(royalty) 없이 로열티(loyalty)만으로 전하는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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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16

스물네번째 窓

 

"남자 생존술"

 

 슬쩍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도 하지만, 올 봄 한국사회를 통째로 들었다 놨다 한미투운동을 지켜보면서 내가 정작 생각한 건 따로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남자가 살아가는 법입니다. 미투운동을 곧이곧대로 보자면, 남성이 여성보다 상당히 우월적 위치에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 사는 남자들이 정말 그렇게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남자니, 여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집밖은 둘째 치고 집안만 들여다볼까요. 당장 예전에 대접받던가장’ ‘아버지의 지위는 이미 바닥을 친 지 오랩니다. 굳이 집안에서의 순위를 따져보니 기르고 있는 강아지 다음쯤 되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한국의 남자 또 아버지의 위상이 어쩌다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졌을까요. 내가 꼽아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질적인 문제. 예전에 아버지는조달청장이었습니다. 매달 월급날이면 아버지는 현금으로 채운 누런 급여봉투를 들고 귀가했습니다.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와 함께요. 그 봉투를 열어 가족의 생활비며 자식들의 용돈을 직접 댔더랬습니다. 말 그대로 아버지의누런 봉투는 전지전능했지요. 그러던 것이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이제 급여는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만 남게 됐습니다. 굳이 아버지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와 다를 게 없다고 할까요. 게다가 카드라는 신무기가 생겼습니다. 그 카드가 가족이 쓰는 돈의 출처를 상당히 모호하게 만들며 조달청의 권위를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정보와 지식의 문제입니다. 예전에 아버지는정보통이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과 지식을 아버지가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었지요. 가족이 잘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 대부분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전달 됐더랬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또 바뀌었습니다. 바뀐 정도가 아니라 뒤집혔습니다. 인터넷이니 모바일이니 SNS니 각종 첨단통신망이 별별 정보와 지식을 다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첨단덕분에 아버지는 가장 정보력이 떨어지는 가족구성원이 돼버렸습니다. 나이 먹은 게 죄라고 TV며 세탁기 등 가전제품 사용법은 그렇다 쳐도,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휴대폰까지 어린 자식들을 통하지 않고는 그냥 움직이는 전화기에 불과하니까요.

 

, 상황이 이러니 아버지는, 그 남자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과 정보력으로 무장했던 권력과 권위가 싹 사라졌으니까요. 그렇다면 말이지요. 앞으로 한국남자들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특히나이든 남자가 이 땅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결국 생존의 문제인데, 뭔가 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이른바남자 생존술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그 첫째는다양한 사람을 접하라는 겁니다. 좁은 우물에 갇혀 꼼지락거리지 말고 네트워크를 늘리라는 얘기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과 잘 맞고, 자신에게 편한 사람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같은 사람과 어울리게 되고 뻔한 대화, 뻔한 지식, 뻔한 관심, 뻔한 인맥에 계속 빠져 살게 되는 겁니다. 의식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려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나이 들어 대접받는다!”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과 지식과 정보로부터 소외되지는 않을 겁니다.

 

어찌 보면 옷차림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청바지에 터틀넥이 편하다고 어디든 이렇게 입고 다닐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스티브 잡스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게다가 청바지를 입고 들을 수 있는 세상얘기는 몇몇 종류로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남자 생존술로 내가 중히 여기는 두 번째는내가 먼저 베풀어라입니다. 누가 해주길 바라지만 말고요. 여기서 베푼다는 것은 굳이 물질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 시간을 쪼개서 나눠주는 것, 상대의 불편을 배려하는 것, 아랫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것 등, 내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를 포함합니다.

 

다만 이쯤에서 슬슬 발동하는 고질병은 조심해야 합니다. ‘잇속 챙기기병 말입니다. 내가 베푼 것을 잽싸게 따져놓고저 사람도 나에게 이만큼은 하겠지?”라며 잔뜩 기대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계산법은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사람관계에서 하는 계산은 늘 대차가 맞지 않으니까요.

 

세상에 내가 일한 것보다 연봉을 더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원은 없습니다. 연인관계에서 남녀가 서로 똑같이 사랑한다는 건 난센스에 가깝고요, 부모자식 사이는 시작부터 일방적으로 잔뜩 기울어진 관계지요. 처음부터 아귀가 맞을 수가 없는 계산이란 겁니다.

 

남성 직원들! 어떻습니까. 공감하나요?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맙시다. ‘남성우월어쩌구를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이 땅의 남자들이여, 제대로 살아남기라도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고 여성 직원들! 설마 방심하고 있는 건 아니지요? 이 문제가 과연 남자만의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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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13

스물세번째 窓

 

"지혜를 얻는 방법"

 

  KG 가족사에는 특별한 문화가 있습니다. ‘자율진급신청제라는 것인데요. 진급을 원하는 직원이 직접 신청서를 내고 회사가 그것을 토대로 그 직원을 승진시킬까 말까를 결정하는 제도지요. 지금이야 가족사도 직원 수도 크게 늘어나 각 가족사 대표가 최종 관리자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내가 직접 관여를 했습니다. 진급신청서를 일일이 다 읽고 하나하나 평가를 하기도 했지요. 물론 처음 시행한 제도로 좀 생소하기는 했습니다.

 

아무튼 그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과장직급의 한 직원이 제출한 진급신청서를 읽고 있는데 참 눈물 빼는 신파조였던 겁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신이 진급을 못하는 걸 늘 걱정하신다는 것, 입사동기들은 죄다 부장을 달았는데 자신은 10년째 과장이란 것, 그 이유는 딱 하나뿐인데 다름 아닌 윗사람에게 찍혔기 때문이란 것, 자신은 일도 잘하고 성과도 잘 냈는데 상사가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 억울할 뿐이란 것 등등.

 

그래서 난 즉각팩트체크에 들어갔습니다. 은밀히 사실관계를 조사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결과가 영 의외였습니다. 이 직원이 그고문관이란 겁니다. 군대에서 많이 쓰는 말인 고문관은 한마디로손이 많이 가는 친구를 말하지요. 말귀 못 알아듣고, ‘빠릿빠릿은 다 내다버렸고, ‘맡은 일=사고치는 일이고, 선임이나 상급자에게 반항하는 일을 나라사랑이라고 믿는. 물론 그 친구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만,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어내는골칫덩이였던 건 맞는 듯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남들은 다 아는무능력을 자신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데요. 되레 그것이 억울하다고 호소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어쨌든 사정을 알고 난 뒤 나는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면담을 했지요. 동료와 상사의 의견을 전하고, 내 생각도 말하고. 그런데 별로 인정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론을 냈습니다. “10년 과장은 너무 잔인하고, 나이 드신 어머니도 생각해야 하니 일단 진급은 시켜주마. 그러니 일하는 방식을 한 번 바꿔 잘 해보자.”

 

,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 직원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급 이후 더 세진 업무강도로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결국 못 견디고 스스로 사직하고 말았습니다.

 

좀 장황해졌습니다만 옛이야기를 길게 꺼내 놓은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때 내 판단의 실수를 다잡기 위해섭니다. 만약 그 직원을 과장으로 그냥 뒀다면 진급은 못해도 직장생활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진보할 수 없다는 참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싶어섭니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의 근원은자신을 아는 일부터란 겁니다.

 

이 분야에 관한 한 독보적인 대선배가 있지요. 철학자 소크라테스 말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란 독한 소리를 여기저기에 하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2000년이 넘도록 인구에 회자되는 이 불후의 명언이 나온 배경이 무엇일까요.

 

어디선가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을 찾아다녔답니다. 그런데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다들 한목소리로 외쳤다는 거 아닙니까. “소크라테스요!” 그래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몰려갔다지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데 비결이 뭡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장 똑똑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 델포이신전에 씌어 있던 말이랍니다. 소크라테스가 좌우명 삼아 자주 사용했다고 하고요. 결국 소크라테스는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똑똑하다는 걸 알고 실천한 사람이었다는 거지요.

 

누구나 자신을 잘 알 수 있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실수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을 잘 안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지혜가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능력이 없으면 없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야 빠지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으니까요.

 

부족한 것을 알아야 남의 것을 채울 수도 있을 거고요. 게다가 인생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법입니다.

 

진급신청을 했던 그 직원과 소크라테스의 차이는 사실 한 끗이었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는 그것 말이지요. 바로 세상사는 지혜를 얻는 방법의 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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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11

스물두번째 窓

 

"허들은 넘는거지 피하는게 아니다"

 

 육상종목 중에허들경주라는 게 있습니다. 스타트라인부터 일정간격을 두고 설치한 10개의 허들을 훌쩍훌쩍 뛰어넘으며 달리기를 겨루는 경기를 말하지요. 장거리 허들경주라면 허들뿐만 아니라 가끔 물웅덩이도 한 번씩 넘어줘야 합니다. 어쨌든 경기의 핵심은 장애물을 모조리 통과하고 골인지점에 빨리 도착하는 겁니다.

 

그런데 드물게 경기장에선 황당한 장면이 보이기도 합니다. 선수가 허들을 피해 옆으로 통과하는 경우 말입니다. 결과가 어찌 나올까요. 그 선수가 1등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아마 바로 실격처리될 겁니다.

 

허들경주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우리네 세상살이가 이런 장애물경주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사는 일에 허들이나 태클 따위가 없으면 참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장애물이란 게 우리 인생에서 그렇게 험한 과정이기만 할까.

 

간혹 내가 우리 직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업무의 진행이 영 시원치 않을 때 말입니다. “왜 제대로 안 되고 있지?”라고 물어보면 대개 이런 이유가 돌아옵니다. “인원이 부족합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다른 부서에서 협조를 안해줍니다등등. 이 말들을 다시 풀어보면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환경과 여건이 온통 지뢰밭이라 뭘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좀 알아주세요란 뜻인 거지요.

 

이런 장면은 굳이 나와 직원 간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 자주 펼쳐질 테지요. 그런데 이쯤에서 슬슬 의심이 생깁니다. 과연 그 이유들이 정말넘지 못할 장애물인가. 그저넘어가기 불편하고 힘든 장애물은 아닐까. 아마 적잖이 그럴 겁니다. 눈앞에 죽 서 있는 장애물이애초에 넘기가 불가능한 건지그냥 귀찮기만한 건지, 제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장애물 탓만 하는 경우 말입니다.

 

비단 회사일에서 뿐일까요. 원체 우리 삶은허들 넘기의 연속입니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더 높은 허들좀 낮은 허들이 있을 뿐이지요. 내가 아는 한 세상은 절대로 꽃길만 내어주지 않습니다. 편한 길 같아 마냥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더란 겁니다. 쉬운 길은 대체로뒤끝이 좋지 않은 법이지요. 거기에 비하면 차라리 허들은 깔끔합니다. 숨 한번 크게 쉬고 폴짝 뛰어넘으면 한 고비는 넘기는 거니까요. 몇 차례 넘다 보면 기량도 늘고 자신감도 생깁니다.

 

허들경주에 나서자고 했으면 허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허들은 넘으라고 놓아둔 거지 피하라고 놔둔 게 아니니까요. 우리네 인생도 다를 게 없습니다. 어차피 장애물경주를 피할 수 없다면 마땅히 장애물을 넘어야 게임이 끝납니다. 요리조리 빠져나간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스포츠의 허들경주와 인생의 허들경주가 다른 점이 있다면 말이지요. 스포츠경기에서는 허들을 피해버리면실격자로 끝나지만, 인생에서는 실격자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운 좋게 한두 번은 피할 수 있다고 칩니다. 점점 크고 높아지는 장애물이 몰아닥칠 거고요, 이를 감당하지 못해 헉헉대다가 결국 인생의패배자로 낙인찍힐 테니까요.

 

다른 점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스포츠의 허들경주는 누가 잽싸게 들어오는가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빨리 달리기 시합이지만, 인생의 장애물경주는 빠르고 늦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끝까지 달리기 시합이란 겁니다.

혹여 달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요? 그건 봐줍시다. 스포츠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허들을 부러뜨리든 자신이 넘어지든 고꾸라지든, 장애물을 피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실격처리는 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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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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