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번째 窓

 

"평형수"

 

 어느 배에든평형수라는 걸 채웁니다. 평형수는 운항 중에 배의 무게중심을 잡으려 저장하는 바닷물을 말하지요. 배의 아랫부분에 넣기도 하고 좌우에 설치한 탱크에 채우기도 한답니다. 물에 동동 뜨는 작은 고기잡이배는 예외로 하고요. 사람도 태우고 짐도 싣고 차도 태우는, 규모가 좀 되는 선박에만 해당됩니다. 그래서 평형수를선박평형수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

 

배에 평형수가 필요한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안정성을 높이려는 거지요. 파도에 휩쓸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던 배를 중심잡게 해주는 역할이니까요. 수평을 맞추려면 배 안에는 반드시 평형수가 있어야 합니다. 오뚝이의 원리라고 할까요. 사실경제성과는 상반된 장치입니다. ‘돈이 되는 공간은 아니란 뜻입니다. 화물을 실어도 모자랄 한정된 공간을 떡하니 바닷물이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정성은 나 몰라라 하고 경제성만 챙기다간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요. 세월호가 전복된 결정적 이유가 화물을 더 실으려고 평형수를 덜 넣은 것, 그래서 배의 복원능력이 사라진 탓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평형수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과연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 물 위에 뜨는 배뿐인가. 중심을 잡는 일은 사람이나 기업에서도 대단히 중요한데.

 

맞습니다. 사람에게도 기업에도 평형수라는 게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뜻하지 않은 위기와 시련을 맞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마다 넘어가거나 뒤집히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물이꼭 필요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사람과 기업은 평형수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사람의 배에, 기업의 건물에 물을 잔뜩 넣어둘 순 없는 노릇이고요. 아마도 평형수를 대체할 만한 게 필요할 겁니다. 내가 생각할 땐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품격이나 가치관, 기업의 사명이나 미래비전 말입니다.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우직한 기본기, 단단한 철학이란 겁니다. 바로평형심인 것이지요.

 

그런데 평형심이 그냥 생길 리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든 기업이든 흔들리는 상황에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감정이 널뛰기를 하면 실행력이 가벼워지고 가벼운 실행력으로는 복잡한 형편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조그만 변화에도 이리저리 좌우로 왔다하는부화뇌동은 결국 일을 그르칩니다. 때론 아니 자주, 진득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고지식함이 긴요하다는 소리입니다.

 

사는 일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그러니 인생을 잘사는 방법은 난관에 빠지지 않으려고 용쓰는 게 아니라 난관에서 잘 빠져나오는 걸 겁니다. 기업이라고 다르겠습니까. 크고 작은 위기와 사건·사고가줄줄이인데,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건 한계가 있겠지요. 차라리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편이 현명한 처신일 겁니다.

 

우리 가족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몇 해 전 이데일리는 판교에서 큰 사고를 겪었습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작은 공연에서 생긴 사고가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겁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기업경영을 시작한 이래 일생일대의 충격을 겪었고, 이데일리 역시 창사 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결국 잘 이겨냈다고 생각합니다. 휘청거리고 기우뚱했으나 이내 중심을 잡아냈습니다. 평형수 아니 평형심이 작동한 것이지요.

 

어떤 일에서든 원칙을 지키는 겁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대의를 생각하는 것이고요. 어떤 유혹이 속삭여도 올바른 방향을 향한 키를 붙잡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만 해낸다면 설사 거센 풍랑에 한쪽으로 쏠린다 해도 즉각 원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썼다는중용에서 말하는평정심이 결국 이런 게 아닐까요.

 

난리법석 떨지 말고 세상을 좀 진중하게 봐라. 촐싹대며 왔다갔다도 하지 말고. 제발 좀!”

 

우리라는 배에는 매일 파도가 칩니다. 이리저리 기울게 돼 있습니다. 맞서 싸운다고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버텨낼 뿐이지요. 그러니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거망동하다간 거센 물결에 휩쓸리기 십상입니다. 차라리 이 파도가 무슨 의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편이 낫습니다. 평형수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벌어진 일의 본질을 되새기며 애써 돌아가게 하는 평정심.

 

평형수의 진짜 가치는 위기상황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위기를 맞으면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숨겨놨던 바닥을 뒤집어보이는 것도 일이 터졌을 때입니다. 방법이요? 평형수를 채워두는 겁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손해를 보는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아예 틀어막는 겁니다. 정말 어이없이 우리의 배가 덜컥 침몰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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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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