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번째 窓

 

"현명과 미련"

 

 가족사 한 직원이 외부업체의 대표를 만났답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회사얘기가 오고 간 모양입니다. 대화 중에 대표는 그 직원에게 일을 잘한다고 슬쩍 칭찬을 했나 보지요. 그런데 그 직원, 한사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답니다. 회사가 든든한 바탕이 돼주니 그만큼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자신은 그저 얹혀간 것뿐이라고. 이 얘기는 우연찮은 기회에 내가 직접 그 대표에게서 들었습니다 

 

보통 회사의 직원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회사를 높이는 직원자신을 높이는 직원’. ‘회사를 높이는 직원은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나는 잘하는 게 별로 없는데 회사 덕을 많이 본다로 시작해서앞으로 더 잘해보고 싶다로 끝냅니다. 반면자신을 높이는 직원은 스스로를 앞으로 드러내고 싶어 안달입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회사가 엉망이라 빛이 나질 않는다로 시작해사실 내가 이 회사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로 끝내지요.

 

, 만약 우리가 양쪽의 얘기를 들어준 사람이라면 어느 직원에게 호감을 갖겠습니까. 굳이 대답을 안 들어도 알 겁니다. 결국 상대에게서 관심을 받고 칭찬을 이끌어내는 쪽은회사를 높이는 직원입니다. 나는 이들을 간단히 이렇게 구분하고 싶습니다. ‘현명한 사람미련한 사람’.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현명하다미련하다가 있습니다. 너무 편하게 말하다 보니 그만큼 함정도 있습니다. 정확한 의미 없이 그냥 그런 뜻이려니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기회에 한번 잡고 갈까요. 내가 구분하는현명미련은 이렇습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파악하고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을현명이라고, 자신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도대체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미련이라고요. ‘현명한 사람미련한 사람에 대한 분석도 바로 나옵니다. 지금 처한 현실과 상황을 잘 판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대처하는 이를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하지요. 그렇다면미련한 사람? 현실감도 없고 상황도 모르고 거기다가 대처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고 칩시다. 참고 넘길 것인가 참지 말 것인가를 잠시 생각한 뒤, ‘들이받자고 결정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괜찮은판단입니다. 그 다음의대처가 중요한데요. 들이받을 친구가 키 190cm에 체중은 100kg이 넘는 거구랍니다. 과연 분노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에게 응징하겠다고 덤벼든다면 현명한 대처를 했다고 하겠습니까.

 

흔히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무엇인가 상대에게 계속 불만스러워 하는 연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사람이 변했다고 따지고 든다면, 혹여 서로의 감정을 식게 한 원인은 찾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관철하려 든다면 활화산에 기름을 들이붓는 미련한 짓이 되겠지요.

 

‘현명’과미련이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명한 기업과 미련한 기업도 있고요, 현명한 국가와 미련한 국가도 있습니다. 기업과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명과 미련의 차이는 흔히 협상테이블에서 잘 드러납니다. 기업 간 M&A나 국가 간 FTA 같은 중차대한 결정 말입니다. 현명한 기업과 국가는 협상에서 중요한 게밀당이란 걸 압니다. 양보할 건 하고 받을 건 받고, 밀고 당기는 기술이 협상력을 높인다는 걸 간파하고 있지요. 그런데 무조건 받아내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막무가내로 고집만 부린다면? 이는 아예 협상을 깨자고 덤비는 것 같은 대단히미련한 짓인 겁니다. 이렇듯현명미련은 개인의 삶을, 기업의 진퇴를, 국가의 운명을 가름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미련을 벗겨내고현명에 다가설 수 있을까요. 당장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요. “많이 배우고 공부해야 현명해질 수 있는 겁니까?”

 

내가 생각할 때현명미련은 지식이 얼마나 풍부한가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옛 어르신을 회상하며현명한 분이라 할 때는 그 분이 얼마나 배웠는가를 재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리판단이 지혜롭고 처신이 슬기로웠을 때에야현명이란 수식을 붙이지요. 교육받을 여건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진 요즘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고 학벌의 엘리트코스 출신이라고 해도 항상현명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니더란 거지요.

 

결국 관건은나 자신을 어디에 두느냐 일 듯 합니다. 모든 판단과 대처에서 나를 배제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에 따라현명미련이 갈린다는 뜻입니다.

 

상사에게 욕 한 번 먹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 직원이 있다고 칩시다. 꽤 근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집니다. 우린 그 직원을 결코 현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억울한 심정을 일단 내려놓고 자신을 욕먹게 한 원인을 찾아 상사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훨씬 현명한 처신일 겁니다. 상황은 이내반전드라마가 될 테니까요. 미련하게 보였으나 현명하게 길을 찾아가는 사람, 인생에서진짜 주인공은 바로 그이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뜻이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제발 미련 좀 떨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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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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