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번째 窓

 

"남자 생존술"

 

 슬쩍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도 하지만, 올 봄 한국사회를 통째로 들었다 놨다 한미투운동을 지켜보면서 내가 정작 생각한 건 따로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남자가 살아가는 법입니다. 미투운동을 곧이곧대로 보자면, 남성이 여성보다 상당히 우월적 위치에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 사는 남자들이 정말 그렇게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남자니, 여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집밖은 둘째 치고 집안만 들여다볼까요. 당장 예전에 대접받던가장’ ‘아버지의 지위는 이미 바닥을 친 지 오랩니다. 굳이 집안에서의 순위를 따져보니 기르고 있는 강아지 다음쯤 되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한국의 남자 또 아버지의 위상이 어쩌다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졌을까요. 내가 꼽아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질적인 문제. 예전에 아버지는조달청장이었습니다. 매달 월급날이면 아버지는 현금으로 채운 누런 급여봉투를 들고 귀가했습니다.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와 함께요. 그 봉투를 열어 가족의 생활비며 자식들의 용돈을 직접 댔더랬습니다. 말 그대로 아버지의누런 봉투는 전지전능했지요. 그러던 것이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이제 급여는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만 남게 됐습니다. 굳이 아버지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와 다를 게 없다고 할까요. 게다가 카드라는 신무기가 생겼습니다. 그 카드가 가족이 쓰는 돈의 출처를 상당히 모호하게 만들며 조달청의 권위를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정보와 지식의 문제입니다. 예전에 아버지는정보통이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과 지식을 아버지가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었지요. 가족이 잘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 대부분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전달 됐더랬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또 바뀌었습니다. 바뀐 정도가 아니라 뒤집혔습니다. 인터넷이니 모바일이니 SNS니 각종 첨단통신망이 별별 정보와 지식을 다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첨단덕분에 아버지는 가장 정보력이 떨어지는 가족구성원이 돼버렸습니다. 나이 먹은 게 죄라고 TV며 세탁기 등 가전제품 사용법은 그렇다 쳐도,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휴대폰까지 어린 자식들을 통하지 않고는 그냥 움직이는 전화기에 불과하니까요.

 

, 상황이 이러니 아버지는, 그 남자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과 정보력으로 무장했던 권력과 권위가 싹 사라졌으니까요. 그렇다면 말이지요. 앞으로 한국남자들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특히나이든 남자가 이 땅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결국 생존의 문제인데, 뭔가 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이른바남자 생존술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그 첫째는다양한 사람을 접하라는 겁니다. 좁은 우물에 갇혀 꼼지락거리지 말고 네트워크를 늘리라는 얘기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과 잘 맞고, 자신에게 편한 사람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같은 사람과 어울리게 되고 뻔한 대화, 뻔한 지식, 뻔한 관심, 뻔한 인맥에 계속 빠져 살게 되는 겁니다. 의식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려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나이 들어 대접받는다!”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과 지식과 정보로부터 소외되지는 않을 겁니다.

 

어찌 보면 옷차림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청바지에 터틀넥이 편하다고 어디든 이렇게 입고 다닐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스티브 잡스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게다가 청바지를 입고 들을 수 있는 세상얘기는 몇몇 종류로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남자 생존술로 내가 중히 여기는 두 번째는내가 먼저 베풀어라입니다. 누가 해주길 바라지만 말고요. 여기서 베푼다는 것은 굳이 물질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 시간을 쪼개서 나눠주는 것, 상대의 불편을 배려하는 것, 아랫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것 등, 내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를 포함합니다.

 

다만 이쯤에서 슬슬 발동하는 고질병은 조심해야 합니다. ‘잇속 챙기기병 말입니다. 내가 베푼 것을 잽싸게 따져놓고저 사람도 나에게 이만큼은 하겠지?”라며 잔뜩 기대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계산법은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사람관계에서 하는 계산은 늘 대차가 맞지 않으니까요.

 

세상에 내가 일한 것보다 연봉을 더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원은 없습니다. 연인관계에서 남녀가 서로 똑같이 사랑한다는 건 난센스에 가깝고요, 부모자식 사이는 시작부터 일방적으로 잔뜩 기울어진 관계지요. 처음부터 아귀가 맞을 수가 없는 계산이란 겁니다.

 

남성 직원들! 어떻습니까. 공감하나요?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맙시다. ‘남성우월어쩌구를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이 땅의 남자들이여, 제대로 살아남기라도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고 여성 직원들! 설마 방심하고 있는 건 아니지요? 이 문제가 과연 남자만의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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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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