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 窓

 

"모르는 자와 잊은 자"

 

 10여 년 전 일입니다. 우리 가족사 KG케미칼에서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는 한밤중 벙커씨유를 탱크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났지요. 담당 직원이 밸브를 열어놓고 잠그는 것을 잊은 겁니다. 벙커씨유는 탱크를 채우고 넘쳐 근처 안양천까지 흘러들고야 말았습니다. 대형사고였습니다.

 

결국 사고는 회사에 큰 상처를 남기고 우여곡절 끝에 해결을 봤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 직원을 문책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물론 실수였지요. 직원이 일부러 밸브를 잠그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잠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놓친 거니까요. 그렇다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덜어내도 되는 걸까요.

 

이렇게 한 개인의 실수가 몰고 온 엄청난 파장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몰라서 저지른 잘못이 큰가, 알면서 저지른 잘못이 큰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니까 좀 봐줘도 되지 않느냐고 할 겁니다. 하지만 내 의견은 좀 다릅니다. “몰라서 한 잘못보다 알면서 한 잘못이 더 크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몰라서 못하는 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알고 있지만 소홀히 해서, 깜박 잊어서, 귀찮다고 내팽개쳐서, 그냥 실수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회사 일이 뭔가 잘못 됐다면 몰라서 못한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한 탓이 더 큽니다. ‘이렇게 하자혹은이렇게 해야 해로 정한 것을 그냥 대충 넘겨서, 간과해서 벌어지는 일인 거지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몰라서 안하는 것보다는 잊어버리고 안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사람관계가 어디 그리 간단하냐고요? 아니지요. 자신의 입장에서 편한 대로 생각해버린다면 그건 해야 할 일을 잊은 겁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내로남불식으로 해석해 버린 겁니다.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을 나는잊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정도는 누구나 압니다. 운전을 할 때 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알지요.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약한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도,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도, 폭력은 나쁘다는 것도 다 압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 실천을 안 하는 거지요. 뭐 대단한 핑계거리가 있지도 않을 겁니다. 그저 바쁘고, 귀찮고, 피곤하고 등등이 주된 이유겠지요.

이런 얘기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아마 역사수업 첫 시간이라면 으레 한 번쯤 토론해본 주제지요. 아주 묵직해 보이지만 내가 볼 땐 이것 역시 간단한 문제입니다. ‘이런 일을 저지르면 저런 결과가 나오니 지난 과오를,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니까요. 그런데 이 문제를 그냥 빨리 잊자는 걸로 대신해버리기 때문에 계속 똑같은 사안이 반복되고, 꼬이는 겁니다.

 

그렇다면 공부는 왜 할까요. 물론모르는 것을 알자는 게 가장 큰 목적일 겁니다. 하지만아는 것을 잘 지키자는 것도 무시해선 안 되는 중요한 목적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르는 걸 알아가는 데는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면서 아는 것을 지키는 데는 참 소홀합니다. 그러니더 배우려고 하지 말고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잊지 마라!’ 이것이 내 공부철학입니다. 모르는 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구글에게 물어보고 차라리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을 실천하는 공부를 하자는 겁니다.

 

회사에서 사고 친 직원이 상사에게 꾸중을 들을 때 늘 하는 말이 있지요.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과연 그가 몰랐을까요. 내가 볼 땐 알면서도 안했을 확률이 훨씬 큽니다. 조직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봐야 할 테니까요. 그 직원은모르는 자가 아닌잊은 자인 겁니다.

 

때늦은 후회는모르는 자보다잊은 자의 몫이 더 큽니다.

 

다만 면피용 예외 한 가지는 남겨두기로 하지요. 물리적으로 정말 기억이 나질 않게 됐을 때, 가령 기억상실증, 치매 같은을 앓게 됐다면 봐주는 걸로요. 건망증이요?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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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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