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번째 窓

 

"반성의 본질"

 

‘립서비스’란 말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베푸는말뿐인 호의란 뜻입니다. 가식적인 칭찬이나 진정성 없는 빈말을 꼬집을 때 그렇게 빗대곤 하지요. 그렇다고 해도 무턱대고 나쁘게만 보지 않은 건 상대의 기분을 맞추고 분위기를시키는 데 이만큼 충직한 봉사도 없으니까요. 다들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립서비스에도 격이 있는 법입니다. ‘최하급이라면 그냥 영혼 없는 입놀림에 불과하다는 거지요. 아니 아주 고약한 서비스가 돼버립니다.

 

내가 아는 한 회장님은 립서비스가 정말 탁월합니다. 시간차 공격에도 능할 뿐만 아니라 날리는 족족 정확히 꽂히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그 신공에 가까운 장기가 삐끗하는 뼈아픈 기록을 세우게 됐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회장님이 골프를 치러 나섰던 날이었답니다. 동반자가 티샷을 탁 치고 나자마자 회장님은 늘 하던 대로나이스샷!”을 외쳤다는 거지요.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샷이 문제였습니다. 빗맞은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캐디도 미처 못 본 상태였고요. 그러자 다들나이스샷!”을 외친 회장님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공이 어디로 날아갔나요?” 그런데 그 회장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자백을 하더랍니다. “사실 나도 못 봤습니다.”

 

그날 이후 회장님의 립서비스는 최하급으로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모든 말이영혼 없는 입놀림으로 간주돼 아무도 응수조차 안하는, 그야말로완전한립서비스가 돼버린 거지요.

 

그런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듣기 좋은 칭찬만 가지고 왈가불가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었을 때 하는 반성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드는 거지요.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싶을 때 사람은 용서를 구하고 또 뉘우칩니다. 그런데 그 반성이 순도 몇 %짜리 진정성일까. 그 속을 들여다보니 몇 %는커녕 대부분 상황을 무마하려는 면피용처럼 보이더란 거지요. 그저 책임을 피하려는 방편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 같더란 얘깁니다.

 

우스갯소리를 한번 해볼까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의 반성은 보통 두 부류로 나뉜답니다. “잘못했다, 하지만 나는 죄가 없다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누명을 썼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죄수들은 한결같이내가 지금 교도소에 있긴 하지만 잘못한 건 아니고 뭔가 큰 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면피로 하는 반성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성은진심을 다 담아해야 합니다. 왜 굳이 그래야 하느냐고요? 영혼이 깃든 반성만이 발전이나 개선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반성을 했다고 하는데도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면 그저 영혼 없는 반성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미안합니다나이스!’를 반복합니다. 하지만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란 말을 하려면 정말 부끄러운 반성이 앞서야 합니다. 칭찬도 마찬가집니다. 상대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진 다음에야 비로소 꺼낼 수 있는 말인 겁니다. 반성과 칭찬은 립서비스로 끝내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진정성이 실종돼 가는 세상, 우린 지금 그저 입으로만 그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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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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