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窓

 

"감정은 빼내고 따집시다"

 

 지금이야 난리가 날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전 학창시절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선생님께 주어진 공권력인체벌이 거의 일상이었습니다. 단체기합이란 명목아래 좀 심하게 두들겨 맞는 날도 있었지요. 진짜 잘못을 했을 때도 있지만, 간혹 억울하게 맞은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그저 한때의 추억일 뿐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된 나중에 두고두고 술자리 안줏감으로 삼을 만큼만이었지요.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깊은 상처가 되는 체벌이 있답니다. 바로 감정이 잔뜩 실린 체벌을 당했을 때랍니다. 잘못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황당하게 맞았다면 평생 가슴에서 꾹꾹 박히는 트라우마가 된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뭔가 잘못을 했을 때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때 정말 조심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감정입니다. 그때 그 순간의 기분에 따른 감정이 판단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가 되어야 하는 거지요.

 

물론 잘못을 하는 쪽뿐만 아니라 잘못을 따져야 하는 쪽도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찌 칼 같은 이성만 들이댈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감정은 최대한, 아니 전부를 빼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감정이 섞이면 상황을 읽어내는 분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진심이 무너지고 객관성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판단이 흐려지고 확신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감정을 잔뜩 싣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자고 나서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는 거지요. “난 절대로 감정적이지 않아.”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그 자신은 잘 압니다. 아니 사실은 당하는 사람도 알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압니다. 이미 그가 감정에 팍팍 실린 상태로 일을 그르치고 있는 중이란 것을.

 

얼마 전 친구의 딸이 결혼을 앞두고 신랑 될 사람과 함께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이것부터 확인했습니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이성적으로 충분히 판단했나? 아직 늦지 않았다. 결혼은 그 다음에 결정해라.”

 

서로 좋아하면 됐다고요? 살다 보면 싫어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돈이 많다고요? 요즘 같은 불확실성이 높은 세상에서는 거지 되는 일도 아주 쉽습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요? 지금까지는 그랬나 보지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누가 장담한답니까.  지금 당신이 느끼고 판단한 것이 혹시 감정이 앞선 어설픈 판단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지난해 한국사회의 이혼율이 33.7%를 찍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남녀간에 결혼의 본질과 의무감을 생각하고 결정했다면 지금보다는 이혼율이 줄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훈육할 때나 회사 일을 처리할 때, 나아가 경제에도 정치에도 법에도 감정이 들어가면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감정도 사랑에 눈멀게 하는 콩깍지와 다르지 않아 이성을 덮씌우면 제대로 사리분별이 안 되는 거지요. 특히 누군가를 단죄할 때나 심판할 땐 감정이 절대로 끼어들면 안 됩니다. 그건 또 다른 죄입니다.

 

감정이 개입한 판단은 이미 틀린 판단입니다.

 

, 지금부터 곰곰이 한번 생각해봅시다. 가정에서 부모나 아이를 대하는 행동에, 직장에서 상사나 부하를 대하는 말투에 감정이 실렸는지 아닌지. 그러고 보니 나도 완전히 거기서 자유롭지는 못한 듯합니다. 이제부턴 감정을 걸러내는 일에 좀더 신중해야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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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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