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窓

 

"미루어 짐작하지 마라"

 

 살다 보면 누구나 생각지 않게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휩싸이게 됩니다. 의도와는 다르게 갈등과 실수가 생기고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되짚어보면 이런 낭패의 대부분이미루어 짐작하는 데서 나오더란 겁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흔히 생기는오해가 대표적입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렇겠거니 상대의 마음을미루어 짐작해 만들어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거지요. 내 감정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게 몰고 가고, 기분이 언짢으면 언짢게 몰고 가는 겁니다.

 

일에서도미루어 짐작이 만드는 실수가 있습니다. 내 편의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확인조차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를 들여다보면 십중팔구는미루어 짐작한 탓입니다. 점검하는 데 게을렀다는 말이지요.

 

예를 하나씩 들어볼까요. 매일 늦던 남편이 어느 날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말하기조차 힘들었는지 피곤했는지 반기는 아내를 보는 둥 마는 둥 바로 누워버렸지요.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합니다. 이제 나를 싫어하나 보다 의심이 발동한 거지요. 결국 쉬고만 싶은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댑니다. 아내의 지레 짐작을 이해하진 못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가 섭섭합니다. 아내의 마음이 변한 것 같다고 역시 지레 짐작한 겁니다.

 

몇 해 전 이데일리가 주최한 세계여성경제포럼에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오프닝이 있은 직후 개회사 순서였습니다. 앞으로 나와 달라는 사회자의 멘트를 듣고 나는 연단 앞으로 나가 섰습니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습니까. 마이크 앞에 당연히 놓여 있어야 할 개회사 원고가 없는 겁니다. 국무총리까지 모신 그 자리에서 나는 500여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애드리브의 결정판을 선보이고 내려왔습니다. 결국 그날의 대형사고는 포럼을 준비한 두 부서가 빚어낸미루어 짐작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사무국은 비서실에서 원고를 챙겼다고 생각했고 비서실은 사무국에서 준비했으려니 생각한 것이지요.

 

사람은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모형제부터 이웃·친구·동료·선후배 등 수많은 관계맺기를 하지요. 그 관계 속에서 웃는 일을 만드느냐 우는 일을 만드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관계를 참 터무니없는미루어 짐작으로 그르쳐서야 되겠습니까. 오해도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내가 좋을 대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실수도 따져보면 내가 편한 대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면요.

 

남에게는예단하지 마라’ ‘속단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는예단하고 속단하길좋아합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상대방의 생각까지 앞서 단정해 버린다는 거지요. ‘나를 좋아한다’ ‘나를 믿는다는 착각은 물론 나를 무시한다’ ‘나를 싫어한다는 비하까지도요.

 

‘미루어 짐작은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꿰뚫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저 상황을 망가뜨리는 첫걸음일 뿐입니다. 물어보고 확인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것이 안전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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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의 窓

날짜

2018.11.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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